소개
기다란 무대 위에는 윌리의 집 거실이 있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윌리는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한 생각으로 잔뜩 고무되어 있다. 그의 환상과 환각 사이 자연스레 거실 의 물건들은 평생 그와 함께 전국을 누볐던 1928년식 쉐보레(Chevrolet) 자동차가 된다.
러닝 타임 내내 도로 위를 운전하는 윌리의 눈앞에는 행복하고 고달팠던 삶의 파편 들이 일렁이고 휘청거리는 에너지로 스쳐 지나간다. 교통경찰이나 거리의 청소부가 죽은 형 벤이 되어 과거 찬란했던 로먼 가족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돈을 벌러 가자며 윌리의 자살을 재촉하는가 하면, 아내 린다 가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습 위로 불륜의 상대인 프란시스가 그를 유혹하는 모습 이 마치 깜박이는 신호등이 춤추듯 겹쳐 보인다. 아들과의 행복했던 한때나 성공한 아들의 모습에 대한 감미로운 판타지가 그를 감쌌다가도 프란시스와의 밀애를 비프 에게 들켰던 가장 치욕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달리는 자동차가 마주하 는 모든 것들이 윌리의 기억 속 조각 조각으로 치환되어 가쁜 호흡과 에너지를 안 고 윌리에게 다가와 부딪히고 이는 ‘과거나 미래의 어떤 의미 있는 사건’으로서가 아닌, 죽음으로 달려가는 윌리의 현재 시점으로 오직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강렬 한 현실’이 되어 펼쳐진다.
관객들은 도로의 양쪽에 앉아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이 비극적 영웅이 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며 그의 지난한 삶의 파편과 열정, 욕망 그리고 회한이 뒤섞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리뷰
무대는 탁자와 의자 몇 개의 가구가 전부다. 가구들이 마치 레고조립처럼 쉐보레 자동차로 변주되는 장면 뒤로 김현탁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커튼콜을 뒤집는다. 이들이 위로하고 있는 것은 배우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한테 위로의 박수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실제 무대감독을 날것 그대로의 캐릭터로 무대에 현존시켜 <윌리로먼 비긴즈>가 연극이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일 수 있으므로, 연극적인 환영을 거세하며 시작된다. 2만 달러에 인생의 희망을 걸고 미국발 패권 자본주의 고속화 산업도로를 달리는 윌리 로먼은 미국의 대표적인 세계 IT 기업과 미국 신자유주의 부의 인물들로 상징되는 KFC 창업자 할랜스 샌더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을 희화화시켜 세계 자유시장 경제와 신자본주의에 조롱을 보내기도 하고, 아버지의 희생에도 가족들은 분열되어 공동체의 가족을 형성할 수 없는 고단한 삶들과 가족의 분열이 분절되어 있는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패권 자본주의에 조롱을 보내며 김현탁의 놀이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그만큼 김현탁 연출의 놀이 형식이 돋보이는 <윌리로먼 비긴즈>로 무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1920년대 쉐보레를 타고 놀이 형식으로 달리는 김현탁 연출의 <윌리로먼 비긴즈>", 김건표, 2024-05-10, 매일일보, https://www.imaeil.com/page/view/2024050921482557110